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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소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 11,29)”

1831년 9월 9일 조선대목구가 설립된 이래, 1846년 병오박해 때 서울 종각 부근에 살던 심락천은 아버지가 천주교 신자라 하여 순교하자 가족을 데리고함박리(현 부천시 옥길동)에 정착하여 인천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신앙선조들은 여러 차례 모진 박해 아래에서 신앙을 지켰다. 1886년 6월 4일 조선과 프랑스가 맺은 한불수호조약 이후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며 제물포항을 중심으로 인천지역 천주교는 성장하였다.
1889년 7월 1일 인천 성당(현 답동 성당)이 창설되어 초대 주임으로 파리 외방 전교회(Paris Foreign Missions Society)소속의 선교사인 니콜라 빌렘(Nicolas Joseph Marie Willhelm) 신부가 임명되었다. 1890년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박순집 베드로가 인천에 내려와 초대 주임인 빌렘 신부를 도와 전교에 힘썼다.



인천지역은 1958년 9월 1일 서울대목구(Vicariatus Apostolicus)에 포함되어 인천 감목대리구(Vicariatus Foraneus)로 설정하며, 메리놀 외방 선교회(이하 메리놀회, Catholic Foreign Mission Society of America; Maryknoll Society)에서 인천 지역 사목을 담당했다. 1961년 6월 6일 서울대목구에서 인천지역을 완전히 분리, 인천 대목구가 설정이 되었으며 메리놀회의 나길모 신부가 초대교구장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1962년 3월 10일 교황청이 한국교회의 교계제도를 정식으로 인준하며 인천대목구에서 인천교구로 승격되었다.

인천교구의 설립당시 소속 본당은 1958년 10월 메리놀회에서 선교를 담당하기 전에 설립된 답동, 송림동, 부평(현 부평2동), 김포, 강화 등 5개 본당과 메리놀회가 선교하면서 설립된 도화동, 선린동(현 해안), 연평도, 백령도 등을 합한 9개의 본당으로 시작했다.
인천교구 승격으로 인한 질적 향상은 초대 교구장인 나길모 굴리엘모 주교 중심으로 본당, 단체, 기관의 설립과 발전으로 이어졌다. 1999년 12월 27일 제2대 교구장인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는 교구의 안정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 기틀 아래 2016년 11월 10일 제3대 인천교구장으로 정신철 요한 세례자주교가 임명되었다.

2016년 1월 31일 기준한 교구의 규모는 인천광역시, 경기도 부천시, 김포시, 시흥시(일부), 안산시(일부) 등의 1개 광역시, 3개 시를 관할하고 124개 본당, 36개 공소에 속한 1명의 주교, 332명의 사제와 약 50만명의 신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