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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 우리는 머리에 재를 얹으며 사순시기를 맞이합니다. 부활을 향해 나아가는 이 여정이 여러분 모두에게 은총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서는 시간이기를 기도합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사순시기 동안 기도와 단식, 그리고 자선을 통해 우리의 죄를 알아보고 진심으로 참회하길 권고합니다.
올해 사순시기는 특별히 사도들의 으뜸이었던 성 베드로 사도의 모습을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사도들의 대표였기에 흔히들 베드로 사도를 생각할 때면 모든 면에서 출중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반석’이라는 뜻의 케파(요한 1,42)라는 이름을 얻은 베드로 사도는 스승 예수님의 부르심에 첫 번째로 응답한 사람(루카 5,1-11)이기도 했습니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라고 자신의 믿음을 용감하게 표현한 이도, 예수님을 “구세주 그리스도”라고 맨 먼저 고백한(마르 8,29) 것도 베드로였습니다.
성경이 증언하듯 베드로는 여러 면에서 특별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인간적 면모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 있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한 그였지만, 인간적 나약함으로 하느님의 계획을 가로막는 사탄이라는 질책도 받아야 했습니다.(마르 8,33) 나아가, 겟세마니에서 수난을 앞둔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기보다 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절대 예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호기롭게 약속했지만, 결국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 사도 또한 나약한 인간이었습니다.
한편,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 가는 것을 주저했지만, 결국 떠나지 못한, ‘예수님에게 사로잡힌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나약한 신앙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베드로 사도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에게 매료되어 신앙인이 되었지만, 인간적 나약함으로 늘 충실하지 못한 우리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마지막 닭이 울었을 때 베드로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눈빛과 마주합니다.(루카 22,62). 결국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슬피 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반을 질책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말 없이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실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이 사랑 가득하고 자비로운 눈빛이 그를 회개의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지난해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문장에 새겨진 문구,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가 떠오릅니다. 예수님이 마태오라는 세리를 부르시는 장면(마태 9,9)에서 비롯된 교황님의 문구는 주님께 늘 충실하지 못한 우리지만, 언제나 우리를 사랑으로 불러주시고 안아주시는 주님의 자비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진짜 의로워서가 아니라 죄와 허물에도, 짐짓 무죄한 듯 자애로 우리를 맞아주시는 주님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번 사순시기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자애로운 시선을 만나고 이를 끝까지 기억하는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이로써 우리 모두 회개의 삶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시간이길 희망합니다. 단죄하시고 질책하시는 주님이 아니라, 죄와 허물에도 언제나 우리를 사랑과 자비로 안아주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드리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아가 허물과 죄에도 ‘자비로이 부르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배워 우리도 마음의 문을 열고 ‘이웃’을 맞아들이는 화해와 환대의 삶으로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2026년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는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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