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 기쁨과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과 모든 이들이 느끼고 체험하였던 감격과 행복이 여러분 모두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살아나신 주님 무덤, 부활하신 주님 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 염포 난 보았네, 그리스도 나의 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부활 대축일 부속가)
‘파스카 희생제물을 찬미’하는 부활 대축일 찬미가는 이렇게 주님 부활의 기쁨을 표현합니다.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의 굴레에 머물던 모든 이들에게 큰 기쁨이요 희망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마침내 우리는 모두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으로 옮아간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되찾아 주신 실로 커다란 사건입니다. 부활을 믿고 고백하는 빛의 자녀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구원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부활을 믿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지난 삶을 버리고,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을 위하여”(2코린 5,15) 살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부활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자 우리 희망의 기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2025년 정기 희년 선포 칙서」 20항 참조).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 모두가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이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희망인 부활의 기쁨은 우리 신앙인의 삶과 교회 공동체를 넘어 사회와 세상 구석구석에 퍼져 나가야 합니다.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사도 4,20 참조) 것처럼, 우리 모두도 주님 부활의 기쁨과 희망을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순례자이자 희망의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활의 기쁨과 희망을 거부하고 회피하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러한 모습을 크게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지나친 개인주의와 낙담 그리고 비관주의입니다.
물질적 풍요를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는 공동체를 생각하기에 앞서 개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인 중심적 경향은 점차 자신을 다른 이들보다 앞세우려 하거나, 나아가 타인을 지배하려는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과도한 자기애로부터 생겨나는 집착, 독단적인 생각과 판단에서 빚어지는 자기중심적 경향이 그로 인해 나타나는 모습일 것입니다. ‘나르시시즘’이라고도 표현되는 지나친 자기중심성의 현상들은 사회적 분열과 단절을 낳고 있습니다. 개인적 경향이 단체적 차원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상대를 단죄하고 모든 통교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지나친 자기애의 집착이 만들어 낸 개인주의로부터 지금 우리 사회는 분열과 단절을 겪고 있고, 이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려 하지 않고, 대화하지 않는 현상들로 몸살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귀를 닫고, 눈을 감고, 마음을 닫은 이들과 그들이 모인 단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탄핵정국은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미래의 불투명성에 기인한 불안을 가중시켜 왔습니다. 헌법 재판소의 결정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대한 혼돈과 두려움을 모두가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시대적 흐름 안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비관주의적 사고들과 국가적, 사회적, 정치적 혼란은 많은 이들에게 낙담과 절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서로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식별도 없이 선동되는 사회적 분위기와 편견과 아집으로 둘러싸여 상대를 심판하려 하는 인간관계의 피폐는 모든 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어려움과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 우리 사회에 주님 부활의 선포는 더욱 간절한 기쁨과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그리스도 부활은 모든 이들에게 전해진 희망이라고 사도 바오로는 선포합니다. 그는 전도 여행 가운데 자신을 죽이려 고발하는 유다인들 앞에서도 부활의 희망을 증언합니다(사도 24,10-21 참조). 사도 바오로의 증언과 같이, 구분과 단절 없이 모든 이가 부활의 기쁨과 희망으로 초대되었습니다. 부활을 믿고 희망함은 죄스런 옛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초대되는 은총 그 자체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 우리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엽시다! 2025년 정기 희년의 성년 문이 열렸다는 것은 희망의 문이 열렸다는 것이고, 하느님 자비의 문이 열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이 당신 자비로 천국문을 열어 주시어 희망을 보여주셨듯이, 우리도 각자가 닫고 있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부활하신 주님께 마음의 문을 열어 부활의 은총과 기쁨을 느껴봅시다. 또한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해 봅시다.
제자들이 빈 무덤을 보고 눈이 열려 부활한 주님을 알아보았듯이, 지금의 현실에 절망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넘어선 희망을 향해 시선을 돌려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부활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을 체험한 이로서, 불신과 의심을 벗어버리고(요한 20,24-29 참조) 믿음의 사회를 건설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의 기쁨을 여러분 모두와 함께 나눕니다. 이 기쁨이 삶 안에 희망으로 가득 차 여러분의 삶이 더욱 주님 앞에 풍요로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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